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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기술사 2차 면접 예상 질문 '지적사'

by 다퍼주는 손과장 2024.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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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기 힘든

지적기술사 2차 면접자료를

공유하고 있다.

기술사 공부를 하는사람들은

1~2년을 독서실에 쳐박혀서

손으로 글씨써가면서

공부하던 사람들이다.

그럼 사람들이 갑자기

손으로 쓴 내용을

짧게 줄여서 말로 표현하는건

정말 어려운일이다.

머릿속으로는

차고 넘치게 알고 있지만

그걸 요약해서 말로 내뱉는

과정이 연습이 안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1차 필기시험이

끝나자 마자 바로 면접준비를해야한다.

필기를 잘 봤건 못봤건

준비해야한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온다.

필기 끝나고 1달이상 쉬었다가

다시 공부하는건 참 힘든일이다.

우선 감이 떨어진다.

떨어진 감을 다시 잡을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면 면접준비 시간이

부족해진다.

오늘은 5번째 시간으로

지적의 역사 관련된

예상질문들을 공개한다.

 

많이 나오는 질문들은 아닐 수 있지만

만약 심사위원중에 원로교수님이

계신다면 충분히

질문할 수 있는 내용들이니

알아두길 바란다.

그럼 바로

지적기술사 면접 예상질문

퍼드린다!!

START!!


[지적사] 문 자호제도에 대해서 말씀해보세요

자호제도는 고려시대에 창설된 것으로 알려진 지번체계입니다. 천자문을 활용해 일정구역에 천자문의 자를 부여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일자오결제도로 사용되었고 토지조사사업에 의해 일본어와 숫자를 조합한 지번제도가 사용되었습니다. 1970년대에는 아라비아숫자만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2014년에는 도로명주소가 도입되어 주소체계가 토지중심에서 건물중심으로 변화 되었습니다.

[지적사] 문 토지조사사업당시 분쟁지 조사와 지금의 경계분쟁시 결정방법을 비교해 설명해보세요

분쟁지조사는 토지사정 과정에서 경계나 소유권에 대한 분쟁발생시 외업조사 내업조사 위원심사를 통해 분쟁을 해결하기위한 절차입니다. 임시토지조사국은 분쟁지심사위원회를 설치해 운영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지적제도에는 경계분쟁시 경계를 결정하는 5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소유자합의, 분쟁당사자 조정과 중재, 경계복원측량, 법원에 경계확정의 소, 지적재조사측량입니다. 과거보다 경계에대한 분쟁시 해결방안이 많아졌으면 이 후에도 지적측량적부심사 등 권리구제 수단이 있습니다.

[지적사] 문 지적전산자료의 연혁을 알고 계신가요?

우리나라 지적전산파일은 1991년 지적공부로 포함이 됐습니다. 행정안전부는 1996년 필지중심토지정보체계 PBLIS의 개발에 착수해 2000년에 완료했습니다. 그당시 건설교통부는 토지관리정보체계 LMIS를 98년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2004년까지 확산하였습니다. 이 두 시스템은 자료의 일관성확보와 사용자 편의성 제고를 위해 2005년 한국토지정보시스템 KLIS가 통합되었습니다.

2014년 18종의 부동산관련 공부를 하나로 통합한 부동산종합공부시스템 운영을 시작으로 기존 지적행정 및 KLIS에 연계된 정보시스템은 부동한종합공부시스템 KRAS로 전환되었습니다.

[지적사] 조선시대 양안의 작성순서를 말씀해보세요

조선시대 양안은 경국대전에 20년마다 작성토록 규정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지켜지지는 않았습니다. 조선시대 양안으로는 강희양안, 경자양안, 광무양안등이 있으며, 최초 측량을 통해서 야초책양안을 작성하고, 중초책 양안을 통해 자호와 지번을 부여했으며, 정서책양안을 통해 최종 양안을 완성하였습니다.

[지적사] 토지조사사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토지조사사업은 한일합방으로 인해 일본에의해서 1910부터 1918년까지 8년간 전국토의 지적을 구축한 사업으로서 근대적 지적제도와 조세제도가 도입됐다는 의미는 있으나, 그 당시 구한말 정부에서도 거렴을 초빙해 근대적기술을 도입했어고 자체적으로 토지조사사업을 시작했던 점을 미루어 봤을 때, 일본이 아니었더라고 우리나라는 자주적으로 근대적지적제도를 설립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적사] 사표에 대해서 말씀해보세요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의 토지대장인 양안에 수록된 사항으로써 토지의 위치를 동서남북의 거리와 소유자, 지목, 경계를 표시하였으며, 도면은 개략적으로 그려 놓았으며 지적도와 유사한 역할을 한 도면입니다.

사표의 기원은 통일신라시대의 진성여왕 5년이고, 사표는 한 도면으로 4필지 이상의 지적사항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사표는 구한말까지 사용되었고, 토지조사사업 당시에도 주소, 성명, 토지의 소재, 자번호와 함께 사표를 신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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